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의 문을 열고 보나(가명, 만 51세) 씨는 가끔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4명의 가족이 화목했던 시절이 언제였나 가물가물하지만, 빚보증을 잘못 서서 한순간에 파산하게 되었던 27년 전의 일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의 추억이 가득했던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은 서로를 그리워할 새도 없이 부채를 갚기 위해…
사랑의 실천, 이웃과 함께하는 로사리오 카리타스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보나(가명, 만 51세) 씨는 가끔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4명의 가족이 화목했던 시절이 언제였나 가물가물하지만, 빚보증을 잘못 서서 한순간에 파산하게 되었던 27년 전의 일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의 추억이 가득했던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은 서로를 그리워할 새도 없이 부채를 갚기 위해…

살아갈 이유 30년 전, 레오(66세, 가명) 씨는 고향 청도를 떠나 부산으로 왔습니다. 보증을 잘못 서서 파산한 부모님께 보탬이 되고자 신발공장에 취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드릴 수 있어 기뻤지만, 자리를 잡아갈 무렵 야속하게도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실직 후 깊은 절망에 빠진 레오 씨를 안타깝게 여긴 친구가 기분전환 겸 캄보디아…

새로운 꿈 루카(가명, 만 36세) 씨는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언제 어디서 의식을 잃고 쓰러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19년 전,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을 때 루카 씨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의 이별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큰 슬픔에 사로잡힌 아버지를 바라보며 힘이 되어주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가족만을 생각하며 캄피(가명, 만 41세) 씨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습니다.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도 그는 가족만을 떠올리고 있을 것입니다. 캄피 씨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 소작농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누나, 학교에 다니는 두 명의 조카를 태국에 남겨두고 홀로 낯선 한국에 왔습니다. 생계를 도맡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지니고 온 지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고,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가족에게 보냈습니다. 가족은 캄피 씨 덕분에 비료를 사고, 대출 이자를 갚고, 학비를 낼 수 있었습니다. 고된 생활이었지만, 전화기 너머 사랑하는 가족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가족의 응원으로 그는 더욱더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캄피 씨 가족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년 11월 어느 날, 캄피 씨는 일하던 도중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도 참고 일하려 했으나 결국 견디다 못해 병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정밀검사를 통해 결핵성 뇌염, 뇌수막염, 뇌경색, 수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라 응급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 후 두 달가량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1월이 되어 혼미했던 의식이 간단한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큼 호전되었습니다. 캄피 씨의 소식을 듣고 아버지와 누나는 억장이 무너졌지만, 한국으로 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캄피 씨는 현재 미등록 체류 상태로 수술비와 입원비, 치료비뿐 아니라 고액의 본국 송환비 마저 부담해야 하지만 도움을 받을 곳이 전혀 없습니다. 수천만 원이 넘는 병원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그의 가족은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보았으나, 턱없이 부족하기만 해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합니다. 오로지 가족만을 생각하며 힘겨운 타국 생활을 묵묵히 버텨왔던 캄피 씨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왔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그의 간절한 꿈을 이루어줄 수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고 싶었던 캄피 씨는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력도 없이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홀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캄피 씨가 건강을 회복하여 고국에 있는 그리운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교우님들의 많은 기도와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들마저 2003년, 요한(가명, 만 66세) 씨는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내와 사별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딸 안나(가명, 만 33세)는 열네 살, 아들 다니엘(가명, 만 29세)은 열 살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같은 밴드에서 일하며 본당에서의 활동도 열심히 했던 요한 씨는 준비도 없이 아내를 떠나보냄으로써 깊은 절망과 슬픔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았던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뒤부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으로 방황하며 아버지의 속을 썩였습니다. 철이 들면서부터는 두 자녀를 홀로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를 보며 조금이나마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왔습니다. 3년 전 어느 날, 다니엘은 이유 없이 몸이 나른하고 무기력해져 병원 진료를 통해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게 되었습니다. 평소 운동을 즐겨 할 만큼 건강만은 자신이 있었기에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큰 병원으로 옮긴 후 10개월간 독성항암치료를 시작하여 다행히도 정상수치로 돌아왔고, 그 이후 10개월간 항암치료 부작용 관리를 통해 마침내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고액의 의료비는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년 만에 급성골수성백혈병이 재발했고, 설상가상으로 급성림프모구백혈병으로까지 전이되었습니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 독성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지만, 항암제를 견디지 못할 만큼 몸이 약해졌다는 의사의 소견에 어쩔 수 없이 수백만원의 비급여 신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딸 안나는 하나뿐인 동생을 간호하기 위해 하던 일마저 그만두고 병원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조혈모세포가 일치하는 골수 기증자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골수 이식은 암세포 수치가 5% 미만으로 내려가야 가능합니다. 희망을 품고 재검사를 했으나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 고가의 신약 치료는 한 달 연장되었습니다. 수치가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지만, 골수이식을 받는다 하더라도 요한 씨 가족은 그동안의 치료비, 무균실 입원비, 골수이식비용 등 수천만원의 부담을 안게 됩니다. 19년 전, 사랑하는 아내를 직장암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요한 씨는 사랑하는 아들마저 떠나보낼 수 없어 이곳저곳의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병원비 마련을 위해 보고 싶은 아들을 보러 가기는 힘들지만,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지니고 밝은 표정으로 새벽미사를 나가는 요한 씨, 그리고 언젠가는 완치되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다니엘을 위해 교우님들의 많은 응원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사랑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신협 131-016-582122 부산은행 101-2017-0218-01 예금주 : 천주교부산교구

스무 살 가장 여섯 살 때부터 민성(가명, 만 19세)이는 동생 지성(가명, 만 16세)이와 함께 친할머니의 손에 자랐습니다. 사업을 실패한 아버지가 이혼하면서 두 아들을 모친에게 떠넘기고 서울로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손에 맡겨진 이후 어머니와의 관계마저도 단절되었습니다. 그렇게 두 형제는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에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고, 어렵게 홀로 살아가던 할머니는 갑작스레 손자들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민성이는 본당 앞마당을 집처럼 여기며 자라왔고, 주일학교 간식을 받으면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할머니에게 드릴 만큼 속이 깊었습니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민성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내신 1~2등급을 유지할 만큼 공부를 잘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품었지만, 고가의 장비와 학원비를 지금 형편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자신이 가고자 했던 대학교와 학과가 아닌 취직이 잘 되는 과가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였습니다. 그마저도 성당과 주변의 도움으로 등록금을 마련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할머니가 작년에 치매 판정을 받음으로써, 15년간 손자들을 돌보아 왔던 할머니는 돌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두 형제는 할머니를 정성껏 모셨지만, 얼마 전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두 손자를 남겨두고 선종하였습니다. 할머니의 존재만으로도 큰 의지가 되었던 두 형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용돈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민성이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동생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고, 이러한 삶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했던 민성이는 벌써 군대에 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내년에 입대를 생각하고 있지만, 고등학생인 동생을 홀로 남겨둘 수가 없어 생계유지 곤란사유 병역감면제도를 신청해 보려 합니다. 민성이와 지성이는 어릴 적부터 두 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좁은 방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다 보니 우애가 깊어졌습니다. 이제 두 형제밖에 남지 않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될 것입니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동생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된 민성이가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동생과 함께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교우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사랑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신협 131-016-582122 부산은행 101-2017-0218-01 예금주 : 천주교부산교구

새로운 시작? 30대 초반이었던 춘련씨(가명, 만 53세)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있는 친척 집에 돈을 벌러 갔습니다. 하지만 네 차례나 중국 공안에 잡혔고 북송을 당해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텨야만 했고, 몸이 허약해진 후에야 겨우 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또다시 붙잡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도망쳤고, 2004년 8월에…
어느 할아버지의 소망 위옌(가명, 77세) 씨는 한국에서의 기억이 전부입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위옌 씨는 일찍이 아버지와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고국의 어려운 상황으로 홀로 한국으로 떠나온 아버지는 이후 가족과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살기 위해 어머니는 그와 그의 남동생을 데리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때가 1950년, 위옌 씨가 여섯 살…
부부에게 찾아온 소중한 생명 무더웠던 지난 7월, 힘겹게 세상 밖으로 나온 쌍둥이가 있었습니다. 1.5kg이 채 안 되는 쌍둥이는 엄마의 품이 아닌 인큐베이터 안에서 가녀린 손으로 삶의 끈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미처 다 자라지도 못한 채 7개월 만에 세상에 나온 두 생명은 인공호흡기를…
오늘도 힘을 내어봅니다. 중도입국청소년. 외국 국적의 부모가 한국인과 결혼하거나, 이주노동자로 입국했다가 뒤늦게 자녀를 한국으로 데려와서 정착시킨 경우를 말합니다. 한국에서 정착할 생각으로 입국했기에 적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이 많은 부분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도입국청소년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만난…
스무 살 승우에게 보내는 응원 아버지가 깨어나기만 간절히 바랐던 5년.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승우(가명, 만 19세)에게 아버지는 곁에 있어도 늘 그리운 존재였습니다. 건설 현장에서의 추락사고로 아버지는 장기간 혼수상태에 있었습니다. 지적장애를 앓는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살아야 했던 승우에게 아버지의 사고는 온 가족을…
이루고 싶었던 소망 낯선 땅, 이곳 한국에서 뮤 닛타(46세, 가명) 씨는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태국 국적의 그녀는 고국에 있는 가족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5년 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녀는 지역을 넘나들고 온갖 일을 하며 가족과 다시 만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만큼 절실했기에…